「제야( 除 夜) 」 와 「죽 음을 슬퍼하며( 傷 逝)」의비교연구―서사방식을 중심으로
2017-03-07金星韩国仁荷大学
| 金星| 韩国 仁荷大学|
1.서론
근대의 뚜렷한 표징 중의 하나가 ‘자아의발견과 확립’이라고 할 때 ,흔히 떠오르는 표현형식으로 우리는 자유연애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의 근대화 진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한 바 있다.
노르웨이의 극자가 헨리 입센(Henrik l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 』(1879)은 1890년부터 동아시아에 유입되었는데,특히 1910년대 문제아 노라의 ‘집 떠남’이라는 파격적인행위가 중한 양국의 문화사상계에 커다란 영향을 일으켰다 . ‘3·1운 동’과 ‘5·4 운동’을 전후로 『인형의 집 』이 한국과 중국에 본격적으로번역되면서 이른바 ‘노라열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열 풍’의 표현으로 중한 양국 작가들의 소설 속에 『인형의 집 』의 대목이 지속적으로 인용되었는데 이는 한동안 ‘자 유연애’를 추구하고자 ‘집 을 떠난 ’ 뒤 여주인공 운명에 소설적 제재가 집중되는 것을 통해 알 수있다.가령 1920년 대 초 ,중반의 중한 소설에나타난 ‘자아의 각성’을 추구하고자 ‘집 을 떠난’여주인공의 경우 대부분이 현실에 좌절되어귀가 , 죽음 , 매음 ,혹은 좌절되지 않더라도 애초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현실적인 삶’을사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대표적이라면1920년 대 말 ,1930년 대 초 소설의 경우 ‘자아의 각성’을 추구하는 여주인공들이 현실의좌절 혹은 ‘현실적인 삶’에서 벗어나 점차 자신의 운명을 ‘사 회해방’이라는 역사흐름 속에서 고려하고 최종에는 그것을 실현하고자 ‘주의자 ’, 혹은 ‘바 야흐로 주의자’로 되는 길을택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작품 속의 여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작가 나름의 고민은 시대별로 ‘여 성해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라고할수있다.
1920년 대 초 ,신여성의 자유연애 문제를다룬 염상섭의 소설 「제 야 」 (1922)와 루쉰(鲁迅)의 소설 「죽음을 슬퍼하며 」(1925)는 이러한 맥락에 놓여져 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두 작품 속에는 모두 입센 및 『인형의 집』의대목이 인용되었고 모두 죽음이라는 결말로여주인공의 운명을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염상섭은 일찍 평문 「개성과 예술 」 (1922),「지상선을 위하야 」(1922) 에서 ,루쉰은 「마라시력설(摩罗诗力说 )」(1907), 「문화편치논(文化偏至论 )」 (1908), 「노 라가 집을 나간 이후(娜拉走后怎样 )」(1923)에서 입센과 노라에 대해언급하였다.
지금까지 「제 야」와 「죽 음을 슬퍼하며」는 각각 『인 형의 집』 과 의 상호텍스트성(1),자연주의문학사조와의 상관성(2),작품 창작 전후 작가가 발표한 평문과의 관계(3)등 방면으로 연구되어 왔었고 두 작품을 비교문학적인 측면에서 진행한 연구(4)도 있는데 주로 사상,내용적인 측면에 치중된 반면 형식적인 측면에 관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다 . 비록 ‘노 라’의 영향으로 같은 자유연애 문제를 다루었고 또한여주인공이 모두 죽음으로 결말을 맺었지만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점이 다른 데에 따라두 작품의 서사효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있다 .루쉰의 경우 ,‘노 라’를 표방하면서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노 라’의 현실적 측면에 주목한 반면 ,염상섭의 경우 ,사회제도적인 측면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주관의지를 관철시키면서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노라’의 정신적 측면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내용에 필적 (匹 敵)되 는 서사형식으로 ,작가가고안해 낸 것이 바로 고백체소설인데 루쉰의경우 일기체소설의 형식을 ,염상섭의 경우 서간체소설의 형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연애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역시 다르다.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시선이 드러날 수 있는 서사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2.1 「죽음을 슬퍼하며( 傷逝)」,물질과 자아 사이의 배회
남녀의 자유연애 문제를 다룬 「죽음을 슬퍼하며 」는 남성화자 쮄성(涓生) 의 수기( 일기)가소설 자체의 구조로 되어있다 .우선 소설의줄거리부터 간단히 보기로 하자.
자유연애사상의 세례를 받은 여주인공 즈쥔(子君 )은 남자 주인공 쮄성의 영향으로 봉건가족제도의 혼인을 거부하고 ‘인 형의 집’을 뛰쳐나와 쮄성과 살림을 차린다 .하지만 애초의달콤함도 잠시뿐이요 ,이들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거처 ,돈의 문제는 물론이고 ,“어떻게 해야 만이 사랑을 함께 가꾸어 나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육속 봉착하기 시작하면서 쮄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즈쥔에 대한 사랑이변질되었음을 스스로 승인하고 결국 각자 살길을 떠나자고 즈쥔에게 권한다 .묵묵부답으로 집으로 돌아온 즈쥔은 결국 우울(抑郁)로생을 마감한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쮄성은 자신의 조급함이 즈쥔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통탄하면서 이를 회개한다.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화자는 현재의 시점에서 죽은 여인인 즈쥔을 그리워하며 강한 ‘회한과 비애’를 드러내면서 즈쥔과 자유연애를하고 ,나아가 가정생활을 꾸리던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여기서 ‘회한과 비애’는 자유연애, 다시 말해 ‘계몽’에 대한 일종의 미련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어서 화자인 ‘나’의 시점은 다시 연인과의과거생활로 돌아간다 .화자는 과거 연인과의연애 , 생활 , 모순 ,사별의 과정을 회억함으로써 자신의 회한과 비애를 토로하는 한편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인의 죽음이고그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연인의 죽음은 총체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응불량’으로 인한, 다시 말하자면 ‘타의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를 회억하는부분은 어떻게 보면 연인이 죽은 원인을 조명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인이 죽은 직접적인 원인을 가정생활의파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사회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사회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동거생활 과정에서 결코 따뜻하지 않은 주위의 시선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봉건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전반적인 제도와의 모순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자가 연인과 봉건적인 가부장제 혼인을 반대하고 자유연애를 통하여 가정생활을 이루지만 그 주위의 몰이해 ,심지어 절교를 대가로 하고 있다.연인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나’는 주위의 친구들과 절교를 선언하고 연인은 자신의 숙부와 친척관계를 종결한다.그만큼 그들의 가정생활은 그 시작부터 불안하였다 .하지만 치명적인 사건은 다름 아닌 ‘나’의실직이다 .‘나’와 연인이 교제를 하는 중 이러한 교제를 지켜보던 ‘크림 바른 아낙’이 그들의 동거생활을 자신의 친구에게 알렸는데 그친구의 아버지가 바로 ‘내’가 다니는 사무국의국장이었다 . 따라서 ‘나’는 국장으로부터 직장을 다니지 말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이때까지만 해도 화자는 이러한 국면을 개변시킬 수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외국의 저서를 번역하는 일로 호구(糊口)하려고하였고 자신 역시 이러한 생활을 “새로운 하늘 아래서 나래치고 새장 속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저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온갖 사소한 생활 속의 마찰로인해 이러한 생각은 차차 변하기 시작한다.그가장 큰 원인을 연인의 변화에 귀결시키고 있는데 이는 개인적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자의 경우 ,자유연애와 가정생활을 낭만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정신적인 사랑과 물질적인 사랑의 양면을 모두 추구한 반면,애초자기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정생활의 시작과함께 연인은 정신적인 측면보다 물질적인 측면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에 화자는강한 불만을 품었고 이러한 불만을 사회공적인 담론으로 드러내고 있다.
진실로 애정은 끊임없이 경신하고 융성하고창조해야 할 것이었다.(240쪽.)
혼자 골똘히 앉아 생각해 보았을 때, 나 자신은 지난 반여 년을 오로지 사랑 ―맹목적인 사랑때문에 인생의 근본적 의의를 일체 소홀히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는 일이었다. 사람은 살아있음으로써 사랑도 거기에따라 생겨나는 것이었다.(245쪽)
연애시절과 다르게 동거생활을 시작으로 낭만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삼시세끼만 생각하는 연인에게 화자는 애정의끊임없는 경신 , 융성 , 창조를 권유한다 .실직의 위기 앞에서 화자는 생존을 우선시하면서사랑은 생존의 전제 아래서만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연인에게 각자 살길을 권유할때도 “그는 이미 책을 읽지 않은 지 오래되고생존이 무엇을 의미한지 잊어버린지라 이러다가 두 사람이 모두 멸망을 할 수 있다”고도한다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다음에도 이러한 자신의 내면의 죄책감과 괴로움을이겨내는 방편으로 그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야말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천재”라고 한다 .화자는 이러한 논술을 펼침으로써 자신의비이성적인 생각과 논리를 은폐시키고 이성적인 담론을 생산한다 .이러한 담론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합리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반박의 여지가 없다 .이로써 작가는 지적이고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남성형상을 독자들에게보여준다 .하지만 과연 ‘사랑과 물질’은 양립불가능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있다.
자고로 ‘현 모양처(贤母良妻)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성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오늘날까지 적용해 왔다 .가정생활의 경우남성이 외사에 주력하는 반면 ,여성은 내사에주력하면서 ‘조 력자’의 역할을 해왔었고 이는사회의 집단무의식 속에 오랫동안 ‘불변의 원칙’으로 작용해왔다 .이렇게 볼 때 사랑과 물질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보조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화자가 공적인 담론을 통하여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시킨 배후에는 연인을 버리고자 하는 혐의도 짙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가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 즉 ‘사랑보다 물질 ’, 그리고 ‘여 성의 독립’을 강조하기위한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루쉰은 일찍 1923년 에 「노라가 집을 나간이후(娜拉走后怎样 )」란 평문을 발표한 바가있는데 노라의 운명을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타락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그는 문장에서 돈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사회제도적인측면이 당분간 변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의 실제적인 문제를 중요시하여야 한다는당위성을 강조하였다 .루쉰이 이렇게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은 ‘5·4운 동’시기의 급진적인 사상의 위험성을 감안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당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위해서는 철저한 사상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행동은 비극을 가져오기 마련이라는 도리를 청년들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둔 것이다 .그만큼 사회로부터 오는 제약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사실 루쉰은 근대 초기 누구보다도 ‘개인’의중요성을 역설하였다 . 일찍 1908년 에 『河南』이라는 월간지의 제 7호에 「문화편치론(文化偏至论 )」이라는 문장을 발표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한 바 있다 .그는 문장에서중국의 전근대적인 문명의 찬란함을 인정함과동시에 그 찬란함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로 인하여 근대에 이르러 서구의 열강에 뒤떨어진사실에 통탄하면서 서구문명발전의 궤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낙후한중국을 구제하기 위하여 문명을 추동하는 사람의 정신을 찬미하면서 물질적인 것을 배제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며 “개인을 믿고대중을 배척하자”는 구호를 제창한 바 있다.그는 슈티르너 , 입센 ,니체를 그 예로 들면서그들의 개인주의를 높게 평가하고 이른바 “개개인이 모여서 국가가 형성되기에 개인의 정신을 발양할 것”을 제창하였다.
초기의 평문에서 ‘개 인’을 중시하던 루쉰이후기에 와서 ‘사 회’를 중시하게 되는데 그 배후에는 계몽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편으로 “개성을 존중하고 정신을 확장시키자”는계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마침 적당히 개개인의 개성을 발전시킨다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또한 장래에 있을지 단정하지 못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렇듯 루쉰에게 계몽과 반계몽이라는 두 가지의 모순적인 사상이병존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55))
이러한 맥락 속에서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루쉰의 어느 쪽에도 쉽게 경도되지 않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근대에 대한강한 불신을 보아낼 수 있다 .소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 화자인 ‘나’는입센의 노라를 언급하면서 연인과 봉건가부장적인 결혼제도를 비판하고 개성적인 삶을 살고자 역설하는데 그 배후에는 계몽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연인과 동거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현실로부터 오는 온갖 타격과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연애는물론이고 가정생활까지 파탄되고 만다.연인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만 봉건적가부장제의영향 아래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연인의 죽음에는 화자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지만 작가는 근본적으로 사회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이 아니고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식민지 ,반식민지라는 ‘기형적 환경 ’아래서 진행된 것이어서 그 여부에 대해 지식인으로서의 루쉰은 항상 회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회의는 그의 일생을 일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화자가 과거의 회억부분에서 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인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즈쥔이 닭과 개로인해 주인집 여인과 다투는 것도 궁극적으로보면 독립된 주거가 없기 때문이고 ,‘내’가 직장에서 잘리고 번역을 하는 것도 ,한겨울에도서관에 가서 화롯불을 쪼이는 것도 궁극적으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질적인측면이 자유연애 존립의 기초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루쉰의 초기 산문에서 물질적인것을 반대하고 정신적인 것을 제창하는 것과는 정반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가 이러한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채택한 서술방식이 바로 사회공적인 담론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간결한 논술의 배후에는 물질적인 측면의 당위성과 함께 현실의 무력감까지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물질적인 것을 완전히 주장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예로는 화자의 ‘비애와 회한’이 다 .가령 이성적인 화자의사회공적인 담론이 물질적인 측면에 대한 작가의식의 배려라면 비이성적인 화자의 ‘비애와 회한’은 자유연애를 대표로 하는 계몽적인담론에 작가의식의 미련이라고 할 수 있다.화자가 소설 속에서 연인의 죽음에 대해 상상 ,혹은 실제로 연인이 죽은 뒤 그 죽음에대하여 ‘비애와 회한’을 토로한다는 대목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많은 논자들은연인의 죽음을 화자의 무책임 ,혹은 남성화자의 남성우위의식의 산물로 논해왔으나 여기서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 즉 루쉰이 ‘낭만적인 자아’의 투영으로 설정한 인물이 바로 즈쥔인 것이다. 자유연애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쩌면 ‘낭만적 자아’를 충족하고자 하는 행동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현실의 냉혹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루쉰은 이러한 ‘낭만적 자아’를 버림과 동시에 ‘현실적인 자아’를 택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고 그일환으로 연인의 죽음을 설정하였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다시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 새로운 생활을 향해 나아가고자 맹세한다. 하지만 이 대목 역시 작가의양가적인 인식이 담겨져 있다 .비록 물질적인생활의 냉혹함을 깨닫고 그러한 냉혹한 사회현실에 적응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사회현실에 결코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지 않았던것이다 .‘망 각과 거짓’으로 앞을 나아가겠다고고백하는 데서 우리는 이 점을 알 수 있다.
2.2 「제 야」 ,절대적 자아의 추구
똑같이 자유연애를 소재로 한 염상섭의 「제야」는 남편의 편지를 받고 회신하는 형식의서간체소설이다 .여기서 발신자는 정인이고수신자는 정인의 남편이 된다 .우선 소설의줄거리부터 간략히 보기로 하자.
정인은 기생첩의 소생으로 어릴 적부터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방탕한 기질을 길러 왔다 .동경유학기간 유희처럼 여러남성들과 사랑을 하고 그 와중에 스스로 여왕의 자세로 군림하면서 유아독존의 자태를 취하였다 .그 후 집안의 권유로 조선으로 돌아와 모교의 교사로 교편을 잡으면서 사회에서소위 ‘신 여성’의 역할을 하며 살아왔으나 방탕한 생활을 금치 못하고 E,P와 애정행각을벌이고 심지어 독일 유학의 꿈까지 꾼다.이와중에 집안으로부터 과거 결혼생활이 있었던남성과의 결혼을 강요받고 이에 반항하고자E와 독일 유학을 위해 잠시 동안 일본으로의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결혼은 성사되었고 자신 또한 임신하였다는 것을발견하고 남편의 용서를 희망하지만 집에서쫓겨나고 만다 .그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남편으로부터 용서의 편지를 받지만 결국 자살을택하고 만다.
화자는 자신의 반윤리적인 행위에 대해 남편 ,또는 사회로부터 오는 비난을 모두 감수하겠다며 소설을 시작하지만 소설의 서사가진척됨에 따라 자신이 반윤리적인 행동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원인을 조목조목 밝힘과 동시에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비판하면서 최종에는 자살을 선택한다.
화자가 범한 죄는 남편을 기만하고 혼전에다른 남자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임신을 한사실이다 .이 행위 자체를 놓고 볼 때 마땅히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아야 하고 화자 자신도이점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남편 또는 사회로부터 오는 비판을 일방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거기에 대하여 ‘자기합리화적 변명’을 하고 있다 .그 전제로 우선 사회적인 통념에 대한 회의가 앞서고 있다.
대저 생이란 무엇입니까 .공연히 철인의 서투른 입내를 내느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과연생이란 무엇입니까 . 운명( 그것도 의심나는 부정확한 관념에 불과한 숙어이지만 )의 장난을 만족시키려는 비눗물의 거품입니까 .그러면 사(死)란무엇입니까 .연애란 무엇입니까 .생식이란 무엇입니까.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양심이란 무엇입니까.정사(正邪) 란 ? 선악이란? 죄란? 속죄란?…… 그리고 사회란, 가정이란, 혈통이란, 연분(缘分)이란 무엇입니까?
(중 략)
‘모든 것이 어린 아니가 만들어 놓은 완구에불과하다. 거기에 무슨 권위가 있고 의미가 있느냐 .주관은 절대다 .자기의 주관만이 유일의 표준이 아니냐 .자기의 주관이 용허(容许)하기만하면 고만이다. (89-90쪽 )
소설의 시작부분에서 화자는 자신 현재의목소리를 강력히 드러내며 사회의 통념과 권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를 표명한다.‘생’ , ‘운 명’ ,‘사’ , ‘연 애’ , ‘생 식’ ,‘결 혼’ , ‘양 심’,‘정 사 ’,‘선 악 ’,‘죄 ’,‘속 죄 ’,‘사 회 ’,‘가 정 ’,‘혈통 ’,‘연 분 ’등 사회의 모든 관념에 대하여 “명료한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오리무중에 쌓인것 같기도 ”하다면서 나아가 정사(正邪)와 선악(善恶)에 대하여 극적인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되면서 그 일극인 ‘개인의 절대적인 주관’을 내세운다 .이러한 절대적인 주관은 개인의각성과 자유를 제일의 원칙으로 하고 있는 강한 ‘탈사회적인 ’낭만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작품의 곳곳에서 화자가 스스로 천명하는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결국 ‘자아 ’대 ‘사회’라는 대결의 구도 속에서 자유연애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자신 내면의 갈등을전개하는 것이 소설 서사발전의 원동력이라고볼 수 있다 .하지만 화자의 서사방식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전제로하면서도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동이 현존의사회윤리도덕의 범주 안에서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시인한다.
‘그러나 천만인이 다 위선자라 하더라도 위선은 위선이고 말 것이다.공도(公道)가 아닌 이상죄악이다 .천만인의 위선이나 죄악을 폭로하고,오십보백보라고 얼마나 조소한들 자기의 더러운죄악에는 일언(一言)의 변호도 될 도리가 없지않은가 .어떠한 새 도덕 아래서라도 ,너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는 절망에울며 신의 구언을 애원하였습니다.(91쪽)
화자는 과거를 회억하면서 스스로 자신의성적 방종의 원인을 유전적인 측면과 가정의분위기에서도 찾고 있다 .그는 기생의 소생이고 ,어릴 적부터 “피차의 행복과 감정을 희생하거나 ,피차의 행동을 감시하지 않고 ,각자의 일종 병적 환락을 무조건으로 보장한다”는가정환경 아래 극에 달하는 자유를 얻었다고한다 .이러한 극에 달하는 자유로 말미암아그는 모든 관념적인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유일한 가치척도로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가치척도로 정조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인 관념까지비판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자신의 신념을내세우고 있다.
자기를 진정으로 보다 더 선(善)에 보다 더진(真)에 끌려는 욕구는 ,전연히 다른 원천을 가진 충동의 힘이 아니고는 기도(企图)할 수 없는것이다. 백번의 후회가 바늘끝만한 이지(理智)의단 한 번의 준동(蠢动)보다도 못하거든 ,후회로자기 개선이 되리라는 도덕론이 어디 있느냐.(111쪽)
자기의 생을, 절대로 충족시키려는 끓는 욕구앞에는, 모든 것을 유린하고 희생하여도, 아깝지않다는 것이, 나의 생활을 자율하여 가는 데에최고 신념이었나이다.(112쪽)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하여 후회란 없는 일이고 오히려 이러한 후회스러운 일을 하게끔하는 그 ‘준동(蠢动 )’을 자기 개선의 최선의방법으로 자부하고 ,자신의 욕구를 절대적인것으로 보며 그러한 욕구를 만족시키기는 것이 자신의 생활을 자율하여 가는 데의 최고신념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데서우리는 화자의 강력한 자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화자는 사회적 통념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행위의 부당성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시인에는 자신 논리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유보하고 있다.
이같이 아무리 교언미구(巧言美句)를 늘어놓을 지라도, 변명은 결국 변명이요 , 남은 것은 엄연한 사실뿐이다 .재로 쌓은 탑만 한 가치도 없습니다 .과연 이러한 변명은 층계의 중턱에서 방황하는 자에게 주는 지팡이밖에 못 됩니다.그러나 나의 이러한 사상이, 그 전부가 틀렸다고는 못하겠지요.(116쪽)
비록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사회로부터 오는 비난들에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하지 않는 데서부터 작가의 서사방식을 알 수있다 .사회공적인 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한편 자신의 부도덕적인 행위를 인정한다.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만자신의 논리를 완전히 전복시키지 않는다.자신의 생각과 행위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예컨대 여자 교육론에 대한 “입은 놀대로 놀고,발은 지상일척(地上一尺)을 못 뜨”는 주체의범위를 확대시켜 “여자뿐만 아니라 소위 사회에 나섰다는 남자도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국 남성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자신 논리의 타당성을 획득하고 있다.이는 「죽음을 슬퍼하며」의 서사방식과 선명한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염상섭 초기작품들의 곳곳에서 ‘개성론’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1922년 4월 『개벽』지에 발표한 「개성과 예술」이라는 평문은염상섭의 문학론의 집대성적 문장이라고 할수 있다 .그는 이 문장에서 근대문명의 수확물 중 가장 본질적이고 중대한 의의를 가진것을 ‘자아의 각성 ’,‘자 아의 발견’이라고 역설하면서 이러한 것을 개개인에 취하여 고찰한것이 바로 개성의 발견이라고 하였다.(6)이는개인의 정신적은 측면의 발전을 주장하는 루쉰의 초기 평문과도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성이 발견되는 심리적인 과정을 ‘현실폭로의 비애 ’혹 은 ‘환멸의 비애’라고 하는데 이 역시 근대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이어 그해 7월 『신생활』 에 발표한 「지상선(至上善) 을 위하여」에서 그는 자아의 각성을 여성의 자유연애라는문제와 결부시키면서 입센의 노라를 빌어 자아의 완성을 제창하였다.(7)
이러한 염상섭의 개성론은 초기의 창작활동이 지나면서 「해 바라기」를 시작으로 점차 강한 주관적인 관념의식이 약화되면서 객관적인관찰의식이 강화된다.「제야」는 바로 이러한강한 주관적인 관념이 표출되는 초기 작품이라고할수있다.
남성까지 비판함으로써 결국 사회 전체를부정하고 비판하였다 .그것도 사회공적 담론을차용하는 방식으로 .따라서 화자가 택할 수있는 길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자살은 어느 정도 개연성을 획득한다 .남편의 용서는 강자가 약자를 바라보는연민의 색채가 농후하다고 할 수 있다.또한화자가 주장하는 강력한 절대적 자아의 모습이 남편이 용서한다는 행위에서 체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만약 이러한 남편의 용서를 받는다면 사실상 자신이 여태껏 주장한‘절대적 자아’의 논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서영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인이 행한 모든 선택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전략적인데이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근거였던 것이다.(8)「죽음을 슬퍼하며」와는 달리 「제 야」에서 우리는 ‘사회적 자아’를부정하면서 ‘낭만적 자아’를 추구하는 염상섭의 작가의식을 볼 수 있다.
3.결론
이상으로 비교문학적인 방법으로 「죽음을슬퍼하며 」와 「제야 」를 분석하였다 .이 두 텍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인형의 집』을 수용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바라보는 작가의시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가의식은 소설의 서사방식에서 선명히 드러나고있다.
「죽음을 슬퍼하며」의 경우 일기체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근대에 대한 양가적인 인식을 작품에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정신적인 계몽을 중시하는 차원에서 화자와연인의 자유연애는 타당성을 갖고 있다.하지만 루쉰이 근대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으로말미암아 이러한 계몽의식에는 균열이 생기게된다 .작가가 소설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사회물질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를 차용하는 것도 이를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절대로 그의 과감한 자아를 추구하는 정신을 제창하고자 하는 것은아니었다 .그렇다고 사회물질적인 측면에 대해 작가 루쉰 역시 불신의 태도를 갖고 있다.거기에 ‘순 종’은 하지만 절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택한 서사방식은 이성적인 사회공적인 담론과 비이성적인 ‘회한과 비애’의 공명(共鸣) 이다. 비록 무게의 중심을전자에 두지만 거기에 완전히 경도된 것은 아니다 .「 제야」의 경우 서간체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 역시 근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개성이다.염상섭이 보기에 개성은 자아각성의 개개인의발견이라고 하는데 그 발견의 과정을 ‘환멸의비애’라고 한다 .이 역시 근대에 대한 강한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염상섭은 소설에서이러한 자아의 각성을 끝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주인공 정인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식의 일환으로 채택한 것이 바로 사회공적인 담론에 대한 전면적인 반박이다.사회공적인 담론에 대해 의심을 표명하고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인정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 배후에는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의 대상이 비단 여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표명함으로써 결국비판의 칼날을 남성에게까지 겨누는 것이다.따라서 입센의 『인형의 집』을 수용한 것은 완전히 그 정신적 맥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가는 사회에 맞서는 개인의 자각을 표방하였던 것이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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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염상섭,「개성과 예술」,『개벽』,1922.
(7)염상섭, 「지 상선(至上善) 을 위하여」, 『신생활』,1922.
(8)서영채, 『사랑의 문법 : 이광수 , 염상섭, 이상』,민음사,2004:159.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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