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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초기 소설에 나타난 ‘주 변부’의재현방식과 작가인식

2017-03-07黄罗莹中央民族大学

韩国语教学与研究 2017年2期
关键词:中央民族大学

| 黄罗莹| 中央民族大学|

1.서론

1960년대 신세대 작가로 각광은 서정인(1)은 등단 초기부터 ‘단편소설의 고전적 성취의한 단아한 본보기’로(2)인식되어 왔으며 “전통적인 서사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한편 그것을 끊임없이 해체하려는 시도”(3)를 하는 작가로 평가되었다 .서정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기법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보편적인 인간의삶의 방식을 구현하였으며 1960년대 사회가지니는 특수한 감수성을 ‘서정인적 리얼리즘’으로 조명해냈다.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중심축은 자본주의적 근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1960년대신세대 작가들은 자본주의 근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산업화 , 도시화 ,농촌분화와 같은 현상들이 가속화되는 과정에 대응하려는 고민은 당연히 그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과 문체를 낳았으며 자본주의적 근대화가낳은 소외 , 물화 ,궁핍화 등이 그들의 주된표적이 되었다.

서정인의 작품세계는 어느 한 유형으로 고정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의 현실인식이 부단히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후송』,『미로』등 초기작품들은 실존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아 소설 전반에 깔린자의식의 각성과 내면의 불안의식에 주목하였다면 『강』을 출판한 이후 그의 작품은 범상한인물들의 구차한 삶의 내력과 사소한 일상적공간을 다루는 것에 더 주목하였다.(4)또한서정인의 리얼리즘적 현실재현 방식 중 주요하게 주목할 부분은 바로 ‘주 변부’에 대한 관심이다 .서정인의 『강』, 『나주댁』, 『벌판』 등초기작품의 사건 발생 공간은 ‘서 울’이라는 중심부가 아닌 도시와 대립되는 공간이며 등장하는 인물 또한 대부분 지방적 공간의 변두리인물들이다.

이는 서정인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1936년 전남 순천 지역에서 태어난 서정인은 많은 작품에서 그의 원체험을 문학을 통해 형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5)주변화라는 공간적 배경은 그의 소설에서 단순히 하나의 장치가 아닌 서정인의 문학 의식과 세계 인식을 고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산업화의 본격적인 대두와함께 초래된 사회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도시와 농촌 ,산업 사회와 전통 사회의 이분법적대립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화를 어떻게인식하는가에 대한 접근의 연구방법적 시각이바로 중심부의 개념과 함께 형성된 주변부에대한 인식이다 .하여 서정인의 소설에서는 주변부가 어떠한 방식과 의미로 재현되는지에대한 고찰이 필요하며 그 속에 내재된 작가의인식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본고는 그의 초기작품인 『강』(1968),『나주댁』(1968),『우리 동네』 (1971)를 대상으로소설 속 ‘주 변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2.주변부 속에 그려진 도시적감수성― 보편적 인간상의 구현

서정인의 작품에서는 도시가 아닌 주변부를배경으로 많이 설정하고 있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감성은 농촌의 향토적 정서가 아닌 도시적 감수성이다 .이 도시적 감수성은1960년대 ,1970년 대 한국 사회의 산업화 ,근대화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 즉 ,사람들의 소외되고 속물화된 보편적 인간상의 구현과 근대적 일상의 체현 ,주변화에 침투된 근대적 인식이다.

소설 『강』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날 ,남자 셋이 일행으로 ‘군하리 석촌’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면서 생긴 일을 다루고 있다 .늙은 대학생 김씨는 자의식이 강하고 낭만적인 사람이지만 그가 이상하는 세상과 현실은 항상 조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아름다운 꿈의 상실과 초라한 현실의 확인’(6)요약되는 김씨의 좌절감의 정체는 군하리에 도착한 후 여관집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소년의 가슴에 달린 반장훈장을 보면서 시골천재였던 자신의 과거를상기하게 된다.

그의 머릿속에는 몽롱한 가운데에 하나의 천재가 열등생으로 변모해가는 과정들이 하나씩떠오른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중학교에 가선 수재가 되고 ,고등학교에 가선 우등생이 된다 .대학에 가선 보통이다가 차츰열등생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온다. 결국 이 열등생이 되기 위해서 꾸준히 고생해온 셈이다.(중략 )그들은 천재가 가난과 끈질긴 싸움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열등생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몰랐다.

―『강』,138쪽.

소년에게 이야기하는 김씨의 발화는 작품의중심적 의미를 환원해서 보여준다 .여기서 소년은 김씨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다 .김씨는 군하리라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 소년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는 ‘시 골천재’의 인생이란 ‘수재’와 ‘우등생’을 거쳐 차츰 ‘열 등생’이 되는 과정임을자조한다.(7)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대학생’은 결국 낙오자가 되기 마련이며 초라한 사회현실을 확인하며 자리에 눕는다.

김씨가 네 다리를 이불 밑에 쑤셔 넣은 채새우처럼 등을 굽히고 옆으로 누워 곤히 자고있는 모습은 마치 쭈그러진 ‘가난한 대학생’의삶을 보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본 여자는 누나가 되고 엄마가 되어 김씨 옆에 머문다.어떻게 보면 여자와 대학생은 같은 ‘낙 오자’일지도 모른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작부가 된그녀 또한 이상과 괴리한 현실에서 나오는 또하나의 소외된 인간일지 모른다 .약자와 약자간의 보살핌과 치유를 통해 물질적 사회에서소외된 그들의 보편적인 삶을 구현해낸다.

이 소설은 중심부로부터 소외된 지식인 김씨가 군하리라는 주변에서 낙오자가 된 자신의 삶을 소년을 통해 돌이켜보고 확인하게 된다 .그 소외의 근원은 단 하나의 요소로 단정짓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중 중요한 이유가바로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시골 출신의 ‘가난함 ’때 문이다 .이 소외가 초래된 원인이 바로개발독재 시대의 폭력성이 가져다 준 경제적양극화이다 .군하리라는 곳에서 김씨는 출발할 때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부터사뭇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와 있게 된 것을확인한다 . 이는 1960년대 후반 시골천재였던한 대학생의 자조어린 환멸은 당대의 젊은 지식인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주체도 아니고 심지어 속물적 출세조차 할 수 없는 좌절감이담겨 있는 것이다.(8)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주변부의 상황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단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즉 서정인은 작품에서 옳고 그름으로 이분화된 세계가 아닌(9)소외된 현실을 가장 현실답게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또한 서정인의 소설에서는 주변부를 욕망의집합체인 대도시의 축소판으로 그려 그 공간속에서 농촌의 감수성이 아닌 욕망으로 가득찬 도시인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부각시켜 그들의 속물화된 인간상을 그려냈다.『나주댁』은 주변부인 전라남도 소도시를 배경으로 그지역에 정착한 지식인들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의 위선적이고 속물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애국을 전문하는 사람들은 서울에만 몰려있는 것이 아니다”라고서술하면서 그 뒤로 학교회의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선생님들에게 애국을 해야 한다고 훈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교장은 전날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러 가지 않고 옴팍질에 술을 마시러 간 일부 교사들을 비판하면서 국가 지성인으로서 애국을 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교장의 이러한 비분강개에감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두 듣는 둥마는 둥 하는 표정이었다. 그날치 애국의 하루몫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회의를 끝내고돌아온 교장은 혼자서 고군분투하느라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나주댁』,147쪽.

하지만 사실은 교장이 호소하는 애국의 이면에는 나주댁이라는 작부와 윤선생님이 있다 .식목일날 교장은 자기가 평소에 좋아하던나주댁 작부가 새내기 윤선생과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그때까지 느껴본 적 없던 열등감을부하직원에게 느끼게 된 것이다 .왜냐면 교장은 그동안 부임해온 교사가 ‘삼류’이 든 ‘일류’이든 이 산골에까지 밀려오는 사람은 모두 일종의 낙오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하지만 교장은 이름이 기억 나지도 않은 사립대학출신의 낙오자인 윤선생으로 인해 밤새도록잠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그 이튿날 회의에서애국을 운운하면서 애국의 이름으로 간접적으로 윤선생을 훈계한 것이다 .훈계를 한 뒤 기분이 좋아진 교장은 사람이 항상 애국만 하고있을 수는 없다며 때로는 전환이라는 것도 해야 되는데 ,술과 여자보다 더 효과적인 전환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주댁을 만나러 간다.즉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고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지만 내면 깊숙한 곳은 적나라한 욕망으로 가득찬 교장의 이중적(10)삶을 보아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교장과 대립된 인물은 윤선생이다 .진실을 잘 모르는 윤선생은 회의 때 비판의 대상이 된 사실에 억울하기도 하고 또교장을 대표로 하는 학교 조직의 부당함에 불만을 느끼며 거세게 비판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윤선생을 무작정 선의의 인물로 부각하지는 않았다 .광주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서전임강사로 부임한 윤선생은 인구 사십만의‘대 도시’에서 삼만의 벽지로 오기 싫었지만 교사 승진이라는 명명 아래 일 년만 ‘봉 사’한다는 마음으로 이 분지 도시를 선택한 것이다.결국 이곳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윤선생 또한자신의 출세와 욕망을 위한 속물이다.

소설의 배경공간인 지방 소도시 전라남도는결코 서울이라는 중앙 대도시와 대립을 이루는 공간이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허위의식이가득 찬 욕망의 집합체인 대도시의 축소판이다 .서정인은 이 소설에서 ‘주 변부’를 또 하나의 욕망과 허위 ,권력이 가득 찬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것은 ‘주변부’와 ‘중 심부’의 갈등이 아닌 ‘주 변부’까지 만연된 근대화가 낳은 물화 현상이다.

또한 서정인은 소설에서 몇 번 등장하지 않은 ‘나 주댁’을 갈등의 중심으로 내세워 소위지식인이라는 인간의 치졸한 욕망을 비판하고있다 .소설에서 교장과 윤선생은 상사 /부하,고용자 /피고용자 ,악 /선 등의 대립구도가아니다 .교장은 국가 , 애국 , 민족보다는 ‘여 자’와 ‘술’에 더 관심이 있으며 윤선생 또한 교장의 권력 행사를 비판하지만 사실 그 또한 ‘강사’가 아닌 ‘교 사’의 더 높은 권력성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 인물이다 .또한 교장이나 윤선생은 모두 교육자라기보다 여자를 좋아하는일반 남자의 전형성과 속물근성을 드러내는전형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인물을구현하는 서정인의 작품에서는 보편적인 인간성에 더 초점을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로 변해가는 지식인들의 삶에 대해 풍자와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3.주변부에 대한 가치판단의배제 ―주체의 탐색

이 시기 산업화가 대두 되고 있는 한국 산업화 사회는 경제적 근대화가 아닌 정치적 근대화의 프로젝트로 자유민주주의 이율배반적구조로 근대화가 가져다주는 소외감과 전통적가치관과의 충돌이 만연되면서 문학의 상황인식 기능이 강화되고 있었던 시기이다.이에많은 작품에서는 주변부의 설정을 도시와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초점화시켜 ,근대화에 물든 주변부에 대한 비판이나 ,혹은 사라져 가고 있는 농촌의 모습과 전통의 상실에 대한안타까움이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서정인의 소설에서는 주변화에 대한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대신 변화되고 있는 주변화의 모습을 통해 주체의 탐색과성찰로 나아간다.

소설 『우리 동네』는 서술자인 ‘내’가 자신의동네를 배회하면서 시야 속에 들어온 마을 풍경과 마을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해준다.소설에서 ‘나’를 통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서울에 살다가 사업에 실패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 ,만나면 도리를 가르치려는 동네 노인 ,동네에서 힘이제일 센 사내 ,누구의 어머니인지 잘 알 수없는 개성이 없는 여자 ,공부는 제일 많이 했지만 빈둥거리면서 노는 젊은이 ,제일 점잖은노인 ,동네에서 제일 못난 놈 ,기성이 엄마등 크게 우여곡절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서정인을 리얼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의 소설은 날것의 현실을 그대로재현한 점에 있었다 .즉 그의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이 곳’의 익숙하면서 차가운 삶의 모습이다 . 그는 ‘지금 -이 곳’을 보다 좁게 구획 지어진 공간 ,즉 대부분 전라도의 어느 궁벽한 도시나 시골마을로 설정하였다.(11)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우리가 익숙한 사람과 사실을 그대로 그려 놓지만은 않았다.『우리 동네』에서는 결코 익숙하지 않은 장치들이드러난다 .예컨대 이 소설에서 ‘나’는 길을 배회하면서 많은 인물들을 지나치지만 ‘나’의 일방적 서술만 있을 뿐 그들과의 상호 소통과대화를 진행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을 지나치고 ‘나’는 갑자기 기분이우울해졌으며 느닷없이 꽥 하고 고함을 질렀다.그랬더니 한 사람이 달려와서 ‘나’더러 술이 취했으면 집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우리 동네』,207쪽.

이 부분에서 ‘내’가 우울하고 소리를 지른원인은 사람들 간의 소통단절로 인한 슬픔과소통을 갈망하는 울부짖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소설 앞부분에 나온 ‘내’가 세 들고있는 동네의 경치 묘사에서 그 단서를 찾을수 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공간은 이미 근대화 발전의 경제 논리에물 젖어 집들이 빼곡히 들어섰으며 집 사이에담을 튼튼히 두껍게 쌓아 고함을 질러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즉 허물없이 지내고소통하는 마을사람들 사이에 ‘담 벽’이 쌓여 의사소통의 단절 , 소외 ,무관심 등으로 전변되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초래하는 소외 문제가 주변부까지 확장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 소설이 가져다주는 낯선 점은 단지 소외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이미 물화에 젖어 있는 ‘나’의 이발소 친한 친구에 대한 내면 심리묘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나’의 동네 친구이자 군대 동창인 이발소 주인은 서울에서 잘나가다가 아내가 개인 빚을 지고 도망치자 고향에 내려왔다 . 하지만 ‘나’는 몇 번이나 짐을싸며 도로 서울로 가겠다는 친구를 보면서 내심 비웃어왔다 .그리고 그의 실패에서 많은위안을 받아왔고 그가 서울에서 성공하면 어떡하나 은근히 근심도 하였다 . 이처럼 ‘나’는친구의 실패에 함께 아파하지 못하고 친구의성공을 함께 기뻐해줄 수 없는 옹졸한 인간이다 . 이는 ‘내’가 동네에서 가장 점잖은 사람을보고 느끼는 감정에서 알 수 있다.

언제부터서인지 그를 전혀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중 략 ).우연한 일로 그가 나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 자신을 잘알고 있었다 . 추잡하고 , 비열하고, 교만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고 ,소심한 놈이었다 .그러한나와 비슷한 사람을 존경할 수는 없었다.나이를먹어감에 따라서 나는 세상이 추악하다는 것을조금씩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206쪽.

나는 인간의 허위 ,이기심을 증오하지만 그런 자신도 증오한다 .자신을 증오하게 된 또하나의 원인은 홀어머니를 혼자 두고 따로 방을얻어아내와나와사는것때문일지도모른다 .‘나’는 동네에서 힘이 제일 센 동네 동생을 만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왜냐면 그는 ‘나’보다 학력도 낮고 가난하고고생도 많이 했지만 힘든 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 다섯을 먹여 살리는 어엿한 가장이다 .이런 동네 동생은 홀어머니를 버리고 나온 ‘나’와 너무 큰 대조가 되어 ‘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홀어머니를 두고 새집에 왔을 때 죄인과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높은 천장과 두꺼운 벽과 튼튼한 담과 깨끗한변소를 보면 많은 위안을 가진 ‘나’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결말 부분에 ‘나’는 엄마가‘나’에 게 술을 권한 노인을 ‘너구리같은 영감탱이’라고 욕하는 것을 보고 통쾌하게 웃어제꼈다.

이 ‘너구리같은 영감탱이’은 바로 ‘나’에게‘홀머니를 두고 나간 것이 어디 인자의 도리냐고 점잖게 꾸짖은 노인이다 .이 웃음은 이기적인 자신에 대한 비웃음일지도 모른다.또한 다시 한 번 이기적이고 속물로 된 자신을부끄러워하고, 성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다.

이 소설에서 ‘나’는 빈둥거리면서 마을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통해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미 근대화에 물든 마을 풍경과 사람들의 소외되고 속물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농촌 현실에 대해 어떠한 동정의 눈길은 주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발화자가 대상에 대한 판단서술이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주체의 내면에대한 감정 표출과 자기 인식 ,자아 탐색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찰하는 서사로 이어지는 상황을볼수있다.

4.결론

서정인은 근대화가 낳은 소시민들의 소외와물화현상을 주변부까지 확장시켜 살펴보았다.서정인 소설에서의 주변부 설정은 도심 변두리가 경제적 ,사회적인 불평등을 예각하기 위한 적절한 배경도 아니며 경제적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장치도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주변부는 중심부와 대립되는 이분법적 구도가아닌 인간의 보편적 삶을 구현해내는 공간이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대립적 구도와 또 구도가 초래할 수 있는 갈등 양상은 서정인의작품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강』,『나주댁』,『우리 동네』등은 주변부를 배경으로 농촌의향토적 감수성 대신 도시적 감수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결국 산업화 사회에 존재하는 제반의 문제 ―욕망 , 세속 ,소외 등 보편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다.『우리 동네』에서는 중심부의 근대화에 의해 점점 파괴되고 동화되어 가고 있는 시골의 모습을 그리면서도그것을 갈등의 중심에 놓지 않고 그에 대한동정과 비판의 눈길을 보내는 대신 주체의 탐색과 성찰로 가능하게끔 하는 하나의 장치로사용하였다 .궁극적으로 서정인의 소설에서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사회적 불평등의관계로 전면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다.그의소설에서 주변화 장치는 사회적 모순이거나계급적 대립 등을 내세우기 위한 것보다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산업화 시기 주변화로만연된 소외되고 속물화된 인간상을 그리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서정인이 등단하고 초기 작품을 창작했던 사회적 맥락과1960년대의 특수한 감수성을 배제하여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심부와 주변부로 이원화되고 있는 근대화 물결 속에서도 단지 근대화가 초래한 부정적 영향에 대해 비판하는시각뿐만 아니라 소외당하고 패배당한,현실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찌들어지는 일상적 자아를 서정인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주석

(1)서정인 (1936-)은 1962년 사상계에서 후송으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8 년부터 2002년까지 전북대 영문학교 교수를 역임하면서 1976년 『강』출간과함께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작품집으로는 『강』(1976), 『가위』(1977),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철쭉제』(1986)등이 있다.

(2)유종호,「삭막한 삶과 압축의 미학」,『사회역사적 상상력』,민음사,1987:27.

(3)강상희,「말과 삶의 형상학」,『한국소설문학대계 46―출 쭉제 외』, 동아출판사,1995:513.

(4)이광호,「소설은 어떻게 눈뜨는가」,『강』,2014:332.

(5)장현,「서정인 초기 소설의 원형으로서의<물결이 높던 날>」,『순천향 인문과학논총』제3 4권 1 호, 2015.또한 서정인은 성장기에여순사건과 항일전쟁을 겪으면서 목격한 충격적인 영상들을 그의 후기소설 「무자년 가을 사흘」,「팔공산」,「화포대포」를 통하여형상화하였다.김미자,「서정인의 원체험과문학적 표현양상」,『현대소설연구』 44,한국현대소설학회,2010.

(6)이남호,「6 ,70 년대 장삼이사들의 삶」, 『작가세계』21호,1994.5:61.

(7) 1960년대는 경제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대학으로의 진출이 확대되었고 ,4.19세대 역시 다수가 지방 출신이다. 이들은 대부분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서정인과 함께 전남 순천고 출신인 김승옥은 산문시대를 통해 서울 출신의 학생들에 대해 지녔던 소외감을 드러낸 바 있다.

(8)이화비평연구모임 지음,『 1960년대 문학지평탐구』,역락,2011:132.

(9)이화비평연구모임 지음, 위의 책,2011:133.

(10)민족문학사연구소,『1 960년 대 문학연구』,깊은샘,1998:35.

(11)이남호 , 위의 글,1994.5:68.

참고문헌

[1]강상희,「말과 삶의 형상학」,『한국소설문학대계 46―출 쭉제 외 』 ,동아출판사,1995.

[2]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편,『 1960년대 문학과 문화의 정치』,계명대학교 출판부,2014.

[3]김건우,「 4.19세대 작가들의 초기 소설에나타나는 ‘낙 오자’ 모 티프의 의미」,『한국근대문학연구』16호,2007.

[4]김미자,「서정인의 원체험과 문학적 표현양상」,『현대소설연구』 44,한국현대소설학회,2010.

[5]민족문학사연구소,『1 960년 대 문학연구』,깊은샘,1998.

[6]서정인,『강』 ,문학과 지성사,2014.

[7]유종호,「삭막한 삶과 압축의 미학」,『사회역사적 상상력』,민음사,1987.

[8]이광호, 「소설은 어떻게 눈뜨는가」, 『강』,2014.

[9]이화비평연구모임 지음,『 1960년대 문학지평탐구』,역락,2011.

[10]임환모 편,『 1960년 대 한국문학』,태학사,2015.

[11]장현,「서정인 초기 소설의 원형으로서의<물결이 높던 날>」,『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3 4 권 1 호,2015.

[12]한순미,『미적 근대의 주변부 ―추방당한자들의 귀환』,문학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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