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연행사의 자금성 견문기
2018-01-17喻顯龍
글|위셴룽(喻顯龍),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국제관계전공 박사생
중국 베이징(北京)의 고궁(故宮)은명·청 양조(兩朝)의 황궁으로 6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를 하늘의 자미성(紫微星)에 비유했고, 황제가 사는 궁궐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에 구궁을 ‘자금성(紫禁城)’이라고도 불렀다. 자금성은 규모가방대하고 건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으며, 궁궐 장식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진귀한 보물이 많이 소장돼 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적깊이를 동경했다. 이런 매력 때문에 자금성은 세계 각국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베이징을 방문하는 외국 원수와 정계 인사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됐다.
과거, 일반인은 이 신비하고 폐쇄된자금성에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이곳으로여행온 외국인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러나 조선에서 온 사람들은 자금성의면모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바로명·청 시대에 양국 사이를 오간 조선 연행사다. 연행사 사람들이 자금성을 보고들은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 진귀한 역사문헌이 됐다.
자금성을 수리할 때 조선 연행사 김만수가 영락제의 베이징 궁궐 수리 소식을 조선에 전하면서 조선 임금에게 명나라가 봉천전과 건청궁 등 건물을 짓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후 자금성 관련 기록이쏟아졌다. 궁궐의 물건과 황제의 모습을기록한 사람도 있고, 건축 규모와 예법을기록한 사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금성의 화려함과 아름다움, 넓음이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656년(순치 13년) 조선 연행사 이요가 천안문(당시 승천문<承天門>)의 건축 형태를 자세하게기록하면서 “금빛과 푸른빛이 휘황찬란하다”고 감탄했다. 그는 자금성에서 제일큰 건물인 태화전을 “햇빛이 금빛과 푸른빛을 비춰 눈부시게 아름답고, 구름이 굽이굽이 이어지며, 향기가 코를 찌르고,속세가 아닌 것 같다”고 기록했다. 1720년(강희 59년) 같은 태화전을 두고 조선연행사 이의현은 “궁궐을 2층으로 지어매우 웅장하다”고 썼다. 그는 태화전 앞에 늘어선 백옥 돌난간의 조각에 특히 주목하면서 “조각이 매우 정교하다”고 감탄했다. 이의현보다 8년 앞서 자금성을 방문한 조선 연행사 김창업은 태화전 앞에서 있는 철제 학과 청동솥(銅鼎)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청동솥의 형태가 특이하고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1780년(건륭 45년)은 청나라가 가장 풍요롭고번영한 시기였다. 조선 사절 황인점은 건륭 시기 자금성을 웅장하고 화려하며 아름답다고 묘사하면서 “황성 내 누각은 화려함의 극치로 다 셀 수가 없다. 신하 등의 말에 따르면 궁궐 안 자금성 사이에태액지(太液池)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사원과 불탑이 가로로 뻗어있어 눈이 부시다”라고 전했다. 근대 들어 1873년 조선 고종 시기 연행사 일행을 따라 베이징에 온 유명한 개화사상가인 강위는 자금성에 들어가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자금성의 규모와 궁궐의 기세에 감동해 <북유일기(北遊日記)>에서 “완전히 딴 세상이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선 연행사들의 견문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자금성의 역사를 다른 측면에서 보게 했고, 문화 교류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과거 자금성은 군림하는 황권을 상징하고 신비감과 거리감이있어 소수의 행운아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러나 현재 자금성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중국처럼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자신감있고 혁신적인 자세로 한국 친구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열정적으로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