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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시쿤(袁熙坤)과 그의 ‘예술 외교’

2018-06-25李卓希

中国(韩文) 2018年6期
关键词:設計中國

글| 리줘시(李卓希) 사진|위안시쿤 본인 제공

‘예술계의 귀재’라고 불리는 그는유화, 수묵 초상화에서 조소까지 걸작을 남겼다. ‘예술 외교 대사’라고도 불리는 그는 국제 문화예술 교류에적극 참여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바로 세계적인 화가이자 조소가, 중국전국정협 위원이자 베이징진타이(北京金臺)예술관 관장인 위안시쿤이다.

집요했던 스케치 훈련

위안시쿤은 1944년 8월 윈난(雲南)성쿤밍(昆明)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위안샤오천(袁曉岑)은 국화(國畫)의 대가이고어머니 스페이위안(時佩瑗)은 생물 교사였다. 어릴적 집안 분위기의 영향으로 그는 자연에 매료됐고 동물을 사랑했다.

1962년 18살 위안시쿤은 쿤밍예술학원 부속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기간중 그는 문예종사자들과 함께 깊은 산속에 있는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민요를 채집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덕분에 시야가넓어지고 자연과 동물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으며 이때부터 회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위안시쿤과 그의 조소 작품 <덩샤오핑,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鄧小平, 中國改革開放的總設計師)>

1970년대에 이미 청년 화가로 성장한 위안시쿤은 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탐사대를 따라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동물 표본 제작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남서쪽 변방의 밀림에서 5년 동안 ‘로빈슨 크루소’ 같은 생활을 했다. 이 기간동안 그는 동물화에 푹 빠져 지냈다.

아버지 위안샤오천과 은사 장자오허(蔣兆和) 선생이 말과 행동으로 위안시쿤에게 전통적이고 착실한 국화 창작의기반을 다져주었다면, 시솽반나에서 보냈던 길고 집요했던 5년 동안의 스케치훈련은 그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척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1992년 10월 16일, 위안시쿤이 넬슨 만델라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위안시쿤의 동양 유화 작품 <산군조상(山君造像)>

이때 연마했던 스케치는 그의 창작에 큰 역할을 했다. “오는 것을 막을 수없고, 가는 것을 잡을 수 없다.” 창작에서의 감정과 충동은 딱 한번만 체험할수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순간적인 느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이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전통 회화에는 없는 생동감이 살아 숨쉰다.

초상화 외교사절로 불리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은 예술가들에게 천재일우의 역사적인 기회를가져다주었다. 위안시쿤의 황금 창작기도 개혁개방 진행 과정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는 해외로 자주 나갔고 독특한 예술 기법과 표현력으로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1999년 1월 위안시쿤은 아시아 유화가로는 최초로 유엔(UN)본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의 유화 작품들은 세계유명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베를린박물관 관장은 “위안 선생의 위대함은 고대와 현대 예술을 결합한 것에 있다. 회화의 주제와 기교는 과거에 뿌리를 내리고있지만 그의 생각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그는 중국화의 정신과 서양 유화의재료를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기법에잘 맞추어 새로운 화풍을 개척해 시간과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라고말했다.

1990년대부터 위안시쿤은 수묵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UN 전 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와 코피 아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전 위원장 사마란치 등 100여 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대통령과 정치가의 초상화를 그렸다. 해외언론은 위안시쿤이 지구촌 각지의 지도자를 한곳에 모았다고 하면서 영향력이 작품 자체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평했다. 때문에 해외 예술계에서는 위안시쿤을 중국의‘초상화 외교 사절’이라고 불렀다.

위안시쿤은 “나는 예술가가 상아탑에 머물러 있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유한한 화폭 위의 한 치의 땅에 자아를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라면 자신의 예술로 사회에 보답하고대중이 제일 관심을 갖는 사업과 결합해야 창작의 세계가 더 넓어질 수 있다고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소는 번역이 필요없다

사람의 수양, 경력, 명망은 지천명(知天命)이 되면 하나로 모인다. 조소는 위안시쿤의 예술을 집대성한 것이다. “나의 재주와 재능으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금자탑을 만들고 싶었다.” 조소를 하게 된초심에 대해 위안시쿤은 이렇게 말했다.

2009년은 마침 중국과 불가리아 수교60주년의 해였다. “당시 불가리아 경제가어려운 때여서 나는 불가리아 혁명가 흐리스토 보테프의 정신을 통해 불가리아인민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보테프의 청동상을 만들어 그의 고향인 불가리아 카롤페르시로 보냈다. 조소는 번역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위안시쿤은 불가리아 문화부가 수여한 예술상을 수상했다.

위안시쿤의 조소 작품 <그레이엄>

동물 그림의 대가인 위안시쿤은 훌륭한 솜씨로 동물 조소상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위안시쿤의 중국화 작품 <마도성공(馬到成功)>

2018년 2월 21일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목사인 빌리 그레이엄이 세상을 떠났다. 2월 24일 위안시쿤의 작품 <그레이엄목사>와 <씨 뿌리는 사람 그레이엄>이 세상에 나왔다. 위안시쿤은 “10년 전 중국원촨(汶川)대지진 때 그레이엄 목사를 알게 됐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진이 발생하자 마자 쓰촨(四川)성 재난지역에 도움의손길을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일을 했다. 내가 인류 문명 진보에 힘쓴 수많은 유명인의 조소상을 만든 이유는 그들의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두 개의조각상은 중국과 미국에 각각 설치돼 양국의 우의에 문화의 교량이 되었다.

위안시쿤 선생은 조각으로 ‘대통령최고 명예 훈장’ 등 국제적인 상을 가장많이 받은 예술가다. 지금까지 유명인 50여 명의 조소상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유명인 조소상은 일본, 그리스, 러시아,미국 등 정부와 관련 국제기관, 박물관에소장됐다. 유명인 조소상 11개, 동물 조소상 3개가 국빈 선물로 선택돼 관련 국가 원수에게 증정됐다.

2016년 국제천문연맹 소행성센터는214883호 소행성을 ‘위안시쿤성’이라고명명했다. 세계 예술계에서 명성이 높은것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위안시쿤 선생은 “작가 잭 케루악은 영원히 젊고, 영원히 뜨거운 눈물을 글썽인다고 말했다.나는 영원히 대가가 아니고, 나는 영원히내 나라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겸손하게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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