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 경제협력의 진전과 향후 전망
2018-06-25글|정지현(대외경제정책연구원베이징사무소소장)
글|정지현(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 소장)
한중일 3국은 동북아 및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핵심으로, 세계경제의 주요 동력이다. 그동안 복잡한 국제정세와 한중일 3국간의 정치·외교적 갈등 등으로 인하여 3국간 경제협력의 필요성은 공감되었지만 협력 논의 및 실행은 지체되어 왔다. 그러나아이러니하게도 한중일 간 경제무역 협력은3국간 복잡한 갈등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최근 북한(조선)의 비핵화 선언 등 한중일 경제협력의 장애요소 중 하나였던 한반도(조선반도) 비핵화 문제가 큰 진전을 보이고 있으나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중간 경제무역 갈등, 글로벌 과잉공급 등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어 한중일 3국간 경제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중일은 2018년 5월 9일, 2년 6개월간 중단되었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도쿄에서 개최하고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과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조속히 타결할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
한중일 FTA 및 RCEP의 의의와 진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지역주의추세에 뒤늦게 합류한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21세기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이후 동아시아역내 국가간 FTA가 주로 체결되었다. 그러나 한중일은 2003~2009년의 한중일 FTA민간공동연구, 2010~2011년까지의 산관학공동연구 등을 거쳐 2012년 한중일 FTA 협상을 개시한 이후, 2018년 13차 협상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협상을 진행 중이다.
세계경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경제권인 한중일 3국간 무역 규모는 EU,NAFTA, 아세안(ASEAN)과 같은 타 경제권의 무역 비중보다 낮은 수준이며, 한중일역내 교역 비중도 EU 등에 비해 역내 협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중일 FTA를 통해 3국간 상품 및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고 투자의자유화가 제고되면 거래비용 등 다양한 비용이 절감되어 3국의 경제적 이익이 증가하게 된다. 또한 북미나 유럽 등과 같은 선진국 경제의 불경기로 인한 수출감소, 통상압력 등의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중일 FTA는 시장 위주의 기능적 경제통합에 비해 지체되어 있는한중일 간 제도적 경제통합을 촉진시킬 수있는 중요한 기반이기도 하다. 한중일 간 경제협력이 그 동안 무역·투자와 같은 시장위주의 기능적 경제통합은 비교적 순조롭게진전되었던 반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제도적 경제통합은 뒤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중일 3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동아시아 GDP에서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동아시아에서 한중일의 경제적 위상이 매우높기 때문에, 한중일 FTA는 3국간 제도적경제통합의 기반이자 동북아,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동맹 및 경제통합의 중요한 초석이될 수 있다. 이 밖에도, 한중일 FTA는 경제동맹을 통해서 동북아의 안보 문제 등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여 정치적인 긴장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
전세계의 GDP에서차지하는 비중
한편, ASEAN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뉴질랜드 6개국(ASEAN+6)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 동반자 협정(RCEP)은 2012년 11월 협상 개시선언 이후 총 19차 협상이 진행되었다. 경제기술협력 챕터, 중소기업 챕터 등 일부분야에서 합의를 도출하긴 하였으나 16개회원국간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상품·서비스·투자 자유화 등 주요 분야에서 합의가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미국 도널드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방침을 발표함에 따라 동아시아차원의 FTA인 RCEP의 중요성이 더욱 제고되면서 협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회원국간 역내 무역자유화를 목표로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방을 추구하고 있는 RCEP 협상이 타결될 경우, 35억 인구에 24조 달러 경제규모(GDP 기준)를 보유한 거대경제권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EU의 경제규모(18조 달러)를 넘어서는 것으로, RCEP 회원국간 경제적 이익과 후생 증가가 기대된다. 회원국 간 통일된 원산지기준을 적용하면 양자 FTA 체결 시 발생하는 ‘스파게티 볼’ 현상이 최소화되고, 원산지 규정이 표준화되면 원산지 규정 준수를위해 소요되던 기업의 비용도 절감된다. 또한 비관세 장벽 등 통관 및 무역원활화 관련 어려움을 다자간에 해결할 수 있어 FTA체결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특히 한국은 기존의 주요 협력국(중국, ASEAN, 일본 등)과의 안정적인 교역 및 투자 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직접적인 경제협력 비중이 높지않았던 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제조업 및서비스업 분업을 통한 이익 증대를 기대할수 있다.
한편, RCEP에서 상품 및 서비스 시장접근 협상이 진전되면 한중일 FTA를 둘러싼 협상 환경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물론한중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 역시 동아시아 차원의 FTA인 RCEP 협상을촉진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의미에서 지난 9일 개최된 제7차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한중일이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고 한중일 FTA와 RCEP 협상을 가속화하여 지역경제 통합 수준을 제고하고 다자간 무역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은큰 의미가 있다.
인식공유 및 갈등극복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
한중일 FTA와 RCEP 체결은 모두 회원국의 경제 성장과 후생 증대를 가져올 수있지만, 그 동안 10여 차례의 공식협상에도 불구하고 회원국 간 이견으로 진전이 더딘 상황이다. 우선 한중일 FTA 협상은 3국간 불안정한 정치외교적 신뢰관계, 민감 산업에 대한 우려, 산업구조의 유사성 증대등으로 인하여 협상 타결이 지연되고 있다.한중일 간 정치·외교적 신뢰 부족은 한중일 FTA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수 있으며, 이의 해소가 협상 타결의 가장큰 기본조건이 된다. 3국의 영토 분쟁, 과거침략 역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 최근 외교안보 갈등과 같은 문제는 한중일 FTA 협상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또한 3국의 민감 분야가 서로 상이하여 한중일 FTA체결 시, 자국 내 정치적 갈등이 생길 수도있다. 제조·서비스업에서 한중일의 경쟁우위가 상이하고 농업·지재권·환경 등 분야에 대한 입장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민감 분야는 한중일 각국 내에서 경쟁력약화로 도태될 수 있는 피해 집단을 발생시켜 국내의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한중일 FTA는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한편, 한중일의 경제협력은 기존의 수평적 분업관계에서 수직적 분업관계로 변화하였으며, 최근 중국의 산업경쟁력 강화 등으로 인하여 상호 산업구조의 유사성이 증대되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RCEP 역시 선진국과 개도국의 무역자유화율 차이, 협상범위 및 방식 등에 대한입장 차이로 합의점에 도달하는데 어려움이적지 않다. 인도 등 일부 국가는 자국시장보호를 우선시 하고 있는 반면, 일본과 호주 등은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무역 협상 분야에서 전자상거래 관련 규칙 정비를 요구하는 일본과 달리 중국은 국외 데이터 유통 제한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중국, 일본과 같은 경제대국과 미얀마 같은 개도국 간 경제규모 차이로상호 간 이해관계의 폭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전자상거래, 통관,금융, 통신, 무역구제, 정부조달, 법률제도등과 관련된 논의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방식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한중일 경제협력의 난제를 극복하고 상호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3국 정상간 협력을 위한 인식의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과거사 및 정치외교 현안 등에 대한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한중일 간 전면적이고 수준 높은 FTA는 이상적이지만 실현가능성은 낮으며RCEP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한중일의 경제협력은 상호간 이견을 최소화하면서 수용 가능한 부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이후, 지속적이고 단계적 협상을 통해 수준높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협력 논의가 가능한분야는 자원, 환경·기후, 의료·보건 분야에서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혁신기술·신산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최근 북한의 비핵화 및경제개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육상망으로 북한을 통과하는 교통, 에너지 인프라 구축 분야에서의 협력을 고려해 볼 수있다. 또한 한중일 FTA 중심의 3국 협력을 기반으로, 현재 뚜렷한 구심점이 없는RCEP의 추진 과정에서 3국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동아시아 역내 경제통합의 발판을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아시아 경제시스템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